1. 방금전 Seung 님의 글을 읽으면서 최근 내가 가진 고민과 매우 유사한 문장을 접했다.

“인생은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이를 공학에서는 최적화라고 한다. 삶에는 수많은 방향성이 있고 모든 방향성이 의미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후에 돌아봤을 때 무언가를 이뤘다는 성취감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남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까. 그게 요즘의 최대 고민이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나의 고민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나는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할까’이다.

 

2. 돌이켜보니 나는 항상 시기마다 집중하던 것들이 존재했던 것 같고, 크게 보면 5년 단위로 구분해볼 수 있다. 먼저 15~19살 학생 시절에는 ‘회사’에 대해서 탐구를 했었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기업가들이 회사를 만들어서 큰 규모로 성장시키는 스토리를 읽는 것이었는데, 아마 여러가지 요인들이 겹쳐지면서 (집에 꽂혀있던 위인전,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 등) 호기심이 생긴 것 같다. 자연스러운 관심이었지만 굳이 하나의 트리거를 고르자면 중학교 2학년 때 읽은 정주영의 자서전이다. ‘할 수 있다’라는 믿음으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거대한 스케일의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정주영의 모습은 영웅으로 느껴졌고, 나도 이러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로 커다란 회사들이 어떻게 시작되어서 어떻게 커나갔는지 찾아보는게 취미 생활이 되었고, 특히 그걸 만들어낸 경영자의 ‘생각’을 읽는걸 매우 즐겼던 것 같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래의 주인공은 내가 되고 싶었다.

최근에 내 고등학생 시절 생활기록부를 찾아보니 장래희망에 3년 내내 ‘기업가’라고 적어놓았을 뿐더러, 생활기록부의 절반 이상이 회사와 경영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있었다. 이렇게 일관된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결과 나는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나는 고등학생 때 일론 머스크를 가장 동경했었고, 따라서 공대에 진학한 다음 이공계 기술을 배워 기술 창업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이과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운이 좋게도 경영학과로 진학한 케이스다. 만약 공대를 갔더라도 이공계 공부보다 경영을 공부하는데 더 큰 시간을 사용했을 것은 분명하고.

 

3. 경영학과로 들어온 다음에는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경영자가 되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던 것 같다. 당시에 ‘처음에 회사를 어떻게 시작하고 & 어떻게 키울 수 있지?’라는 질문을 항상 머릿속에 가지고 다녔는데, 대학교 들어가보니 학교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절대 못찾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실제 이야기를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당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례들은 ‘스타트업’이라고 불리우는 주로 인터넷-모바일 시대의 벤처 기업들이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강연에도 찾아가보고, 린 스타트업같은 방법론에 관한 것도 찾아보고, 웹-앱 서비스는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운영하는지 공부하고, PO/PM 같은 스타트업의 직무에 대해서도 하나씩 다 찾아보고 하는 등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내가 이것저것 다양한 산업을 공부한 것도 어떻게보면 내 사업 아이템을 찾아야겠다는 열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심지어 나도 창업 비스무리한거 해보겠다는 시절도 있었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진 못했다).

근데 맨날 간접적으로 찾아보기만 하는걸로는 진짜로 알기 어렵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우선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회사가 커나가는걸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군대에 있던 시절에 내가 가고 싶은 스타트업 리스트를 만들었던 것이고, 운이 좋게도 군대 전역한지 얼마 지나지 않고 내가 가장 원하는 회사에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처음에 회사를 어떻게 시작하고 & 어떻게 키울 수 있지?’라는 질문을 품고 살아오고 있었고 회사도 이 관점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솔직히 내 직무에 대한 고민 이상으로 해당 질문의 답을 찾는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해당 질문에 정답이 없다는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어느정도는 만들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그렇게 20살부터 해당 질문에 대한 내용을 5년간 채우고 25살로 넘어갈 무렵, 운이 좋게도 10개가 넘는 선택지가 나한테 다가왔고 선택을 해야하는 시점이 왔다. 당시에 여러 기준들을 세워보면서 고민하던 기억이 떠오르는데, 이는 내 노션에 이렇게 적혀있다. ‘창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회사 오퍼레이션을 한번 더 경험할 것이냐 vs 투자업을 경험하면서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것이냐’. 결과적으로 나는 VC가 되었다. 재밌는건 최종 의사결정은 직관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고, 그 선택을 내리게 된건 ‘1) 사람 2) 자유와 책임’ 이었다고 후행적으로 이유를 붙였다.

어떻게보면 굉장히 뜬금 없이 창업자가 아닌 투자자라는 업을 선택한 것인데, 지금보니 이 선택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선 ‘처음에 회사를 어떻게 시작하고 & 어떻게 키울 수 있지?’라는 질문을 투자자 관점에서 생각해보는건 또 다른 배움을 주었고, 나는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그 자체에서도 매우 큰 흥미를 느끼는구나 깨닫기도 하였다(= 생각보다 투자자의 삶이 재미있다는 뜻). 하지만 아직도 창업이라는 것을 마음에서 놓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최근 찾아낸 둘 다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은 차세대 투자 회사를 만든다면 창업과 투자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걸 알았다 (박현주의 미래에셋이 좋은 레퍼런스다). 아니면 YC라는 투자 회사를 경영하다가 창업 일선으로 다시 뛰어든 샘 알트먼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현재 ‘Venture’ ‘Capitalist’로 일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앞의 ‘Venture’에 대해서는 20~24살에 공부하던 것이 지금 와서 발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지금의 나는 ‘Capitalist’라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근해보고 있는 것 같다. 전자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탐구하겠지만, 당장의 나는 왜인지 후자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이 관점에서 나는 요즘 투자자의 기본 스킬과, 잘하는 & 위대한 투자자들의 공통점, 스타트업을 넘어서서 다양한 자산군으로의 관심 범위 확대, 새로운 금융 상품에 대한 가능성 등을 공부하고 있다. 물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Venture’와 ‘Capitalist’ 둘 다 시간을 동일하게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균형이 맞춰지고, 결국 ‘Venture Capitalist’로의 나만의 강점이 형성될 것 같다.

 

5.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시기마다 주요하게 품고 있던 생각이 있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5년뒤 미래가 결정되었다는걸 볼 수 있다. 그래서 첫번째 문단에서 이야기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나는 어떤 것에 집중해야할까’라는 질문을 다시한번 던져보게 되었고, 나의 생각 흐름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정리하면 아마 25~29살의 나는 이전에 탐구하며 쌓아온 ‘처음에 회사를 어떻게 시작하고 & 어떻게 키울 수 있지?’라는 나만의 답을 ‘벤처’ 투자자로서 발현시키며 증명해내는 삶을 살아감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쌓이는 ‘투자자’로서의 지식들을 30살 이후로 본격적으로 발현시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 그게 어떤 형태일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나는 어떤 것에 집중해야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심플한 것 같다. 그냥 벤처투자자라는 직업에서 최고가 되면 된다. 즉, 지금의 나는 ‘어떻게하면 더 잘하는 벤처투자자가 될 수 있을까?’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고, 이에 대한 나만의 답을 쌓는데 총 5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