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인스타에서 비행기를 타는 친구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고, 생각해보니 4년 동안 해외를 나가본적이 없길래 어디든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나 자신을 다른 환경에 놓아서 현실에서 벗어난 다음, 완전히 새로운 인풋으로 채워줄 필요성이 느껴지기도 했고 (= 새로운 시야와 관점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준비를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한국 근처의 익숙한 나라 위주로 찾아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가장 만만한(?) 도쿄가 떠올랐다. 그동안 도쿄를 3번이나 갔다 왔기 때문에 지도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도시이기도 하고, 간단한 영어로도 소통이 가능하고, 경비도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4년 전에 방문했을 때 도쿄는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는 도시였는데, 실제로 얼마나 달라졌을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쿄는 진화해있었고, 그동안 내 자신도 성장했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1. 더 풍성해진 도쿄의 스카이라인

나는 도시 한복판에서 높은 건물들 구경하는걸 매우 좋아한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와 도시의 경쟁력은 결국 건물의 높이와 밀도로부터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본이 투입되었다는 의미니까. 그런 관점에서 4년 전의 도쿄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기대가 될 수 밖에 없는 도시였다. 시부야 히카리에 옆에는 스크램블 스퀘어가 거의 다 올라가서 완공을 앞두고 있었으며, 도라노몬 힐즈 모리 타워 옆에는 전부 다 공사장 이었고, 마루노우치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가보니 내가 보았던 공사장들은 전부 다 높은 건물로 바뀌어 있었음은 물론이고, 아자부다이 힐즈, 도쿄 포트시티 다케시바, 도큐 가부키초 타워 등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건물들 또한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또한 재개발을 통해 아름답게 가꾸어진 동네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시부야의 미야시타파크, 시모키타자와, 하마마쓰초&다케시바 같은 동네를 걷는게 무척이나 재밌었고, 생긴지는 꽤 되었지만 후타코 타마가와, 키치죠지 같은 동네를 걸으면서도 잘 개발된 동네를 탐험하는 재미를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더 밀도 높아진 마루노우치

2. 도쿄의 건물 구경

위에서 동네 위주로 언급했는데, 사실 동네 하나하나마다 재미있는 건물로 가득한게 도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모리에서 지은 초고층 빌딩들이라고 생각한다. 도쿄의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미나토구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모리의 로고를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모리의 기세는 엄청나다. 롯폰기힐즈, 아크힐즈로 레퍼런스를 쌓은 모리는 도라노몬, 아자부다이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정말이지 부동산으로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은 기세를 뽐내고 있다. 모리가 지은 건물들은 단순히 오피스만 있는게 아니라, 거주시설과 리테일을 함께 지어놓았기 때문에 특히나 참고할께 많다 (서울 2040 도시계획에는 ‘보행일상권’이라는 개념이 언급되는데, 내가 봤을 땐 모리가 지은 타운들이 레퍼런스인 것 같고, 높은 확률로 용산 개발이 이런식으로 이루어질 것 같다).

참고로 모리 부동산은 자신들이 개발한 주요 건물들을 담아 놓은 모리힐즈리츠(TYO:3234)를 운영하고 있는데, 나는 장기적으로 이 리츠를 조금씩 사모아서 여기서 나온 배당으로 주기적으로 도쿄 여행을 다녀오는걸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수익률을 떠나서 뭔가 낭만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실제로 요즘 도쿄 중심지 부동산 가격폭 상승이 심상치 않다 (참고자료 1, 참고자료 2)

여담으로 이 동네 타워멘션들은 도쿄 내에서도 최고가를 자랑하는데, 건물 하나하나 보는 맛이 있으니 참고하자. 아크 힐즈 옆에 위치한 스미토모 가문에서 운영하는 센 오쿠 하쿠코칸 미술관 주변을 돌아다니면 최고가의 타워멘션들을 쉴 세 없이 구경할 수 있다.

Azabudai Hills|Major Project|Mori Building Co., Ltd.
아자부다이 힐즈 조감도. 현재 건물은 다 올라간 상태다.

내가 도쿄에서 모리타운 다음으로 좋아하는 곳은 미드타운이다. 미쓰이 부동산은 일본 3대 재벌 계열사 답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데, 그런 미쓰이 부동산이 야심작으로 내놓은 곳이 미드타운이고 그만큼 퀄리티가 차원을 달리한다. 건물의 스케일도 위엄있지만, 특히 미드타운의 리테일은 도쿄 내에서도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롯폰기 미드타운의 쇼핑몰 ‘갤러리아’는 누가 봐도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뿐더러, 주변에 21_21 디자인사이트, 국립신미술관이 있는 만큼 디자인 샵들도 많이 들어와 있어서 특히 볼꺼리가 더 많은 상점이라고 생각한다. 히비야 미드타운 또한 미쓰이 부동산의 힘을 느낄 수 있고, 가장 최근에 오픈한 야에스 미드타운도 들렸는데 이번 도쿄 방문중 가장 사람 밀도가 높았던 건물이었을 만큼 핫함을 뽐내고 있었다 (저랑 비슷한 취향인데 마루노우치에 들렸다면 KITTE & 마루노우치 빌딩만 보지 말고 야에스 지역도 돌아다녀보길 추천합니다.)

미드내운 내 갤러리아 전경

마지막으로는 하마마쓰초・다케시바 지역에 위치한 포트 시티가 인상깊었다. 하마리큐 온시정원으로 향하다 새로 개발된 지역이 있다고 해서 잠깐 들려본건데, 오다이바 이상으로 신도시 느낌이 나서 인상깊었다. 그중에서도 도큐부동산과 카시마건설이 함께 개발했다는 ‘포트시티 다케시바 오피스타워‘는 누가 봐도 멋진 테라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소프트뱅크 본사가 들어와있는 건물이기도 했다 (그만큼 최첨단 빌딩이기도 하다). 바로 옆에 있는 워터즈 다케시바에도 들려봤는데 아이들과 함께 산책나온 부모들이 많은걸 보니 정말 살기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위치도 모리 타운&마루노우치가 차타고 20분도 걸리지 않는 지역이라서 너무 뛰어난 것 같다. 한마디로 일본에 거주한다면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지역이다 (그만큼 한국인 관광객이 절대 들릴 일이 없을 것 같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나는 도쿄에 들리면 건물&부동산 구경을 열심히 하는 편이고, 이렇게 관찰한 내용들은 한국의 상업용 부동산을 볼 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포트시티 다케시바 오피스타워의 테라스

3. 편집샵이 발달한 도쿄

원래부터 일본, 특히 도쿄는 편집샵이 발달한 도시였고, 그 정점에는 츠타야 서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도쿄를 돌아다니며 츠타야 외 다른 편집샵들의 규모들이 상당히 커졌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빔즈(BEAMS)가 정말 어딜가나 보이는 수준으로 성장했는데, 옷을 넘어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다루고 있었고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한듯한 인상을 받았다. 찾아보니 매출이 1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큰 기업이 되었더라.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또한 빔즈 매출을 훨신 뛰어넘는 거대 편집샵이 되어 있었고. (편집샵 참고자료)

다음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쌀 편집샵 아코메야의 매장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점인데, 예전에는 긴자에 조그마한 상점을 가진 브랜드였다면 이제는 중심 지역에서도 가장 핫한 건물에 입점할 정도로 성장했고, 단순히 쌀 품종 제안을 넘어서 음식 재료, 그릇, 젓가락 등 주방과 관련한 모든 것을 제안하는 커다란 브랜드로 진화한 것 같았다 (예전부터 주방 제안은 하고 있었지만, 뭐랄까 다루고 있는 제품의 수 자체가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노즈 숍 이라는 향수 편집샵도 시부야 미야시타파크, 신주쿠 뉴우먼 등 핵심 리테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도쿄는 취향이 고도로 발달한 도시라고 다시한번 느낀 것이, 후글렌 도쿄부터 시작해서 시부야로 내려오는 거리를 걸으면서 다양한 편집샵을 구경할 수 있었고, 시부야 근처에서 갑자기 LP판에 꽂혀서 페이스 레코드, HMV, 레코판 등을 휘졌고 다녔는데 진짜 다양한 LP판을 구경할 수 있었다 (결국 타케우치 마리야의 Request 초판을 하나 사버렸다). 사실 일본인들의 취미 생활 깊이는 츠타야 서점 가서 잡지 코너만 가봐도 느낄 수 있다.

일본에 왜이리 편집샵이 많은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추측해보면 거대한 내수 경제(&잃어버린 30년)으로 인해 취미생활이 고도화 되었으며, 여기에 소비의 양극화로 인해서 편집샵이 발전한게 아닐까 싶고, 장기적으로 한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 기록을 남겨보았다 (실제로 삼성물산의 편집샵 비이커는 매출 1000억원을 넘길 정도로 고성장하고 있고, 또한 나는 무신사를 온라인 버전의 진화한 편집샵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긴자식스 츠타야가 가장 좋다

4. 일본은 여전히 문화 강국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일본은 취향이 발달한 나라이고, 누구나 알다시피 그 끝판왕은 콘텐츠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다시 한 번 느낀게 시부야 파르코에 닌텐도 스토어가 생겼다길래 들려보았는데 이것이 IP 비즈니스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계 누구나 아는 IP를 가졌음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돈을 빨아들이는 단계로 진화한 것이 느껴졌는데, 닌텐도는 정말 위대한 회사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굉장히 부러웠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슈퍼 닌텐도 월드, 그리고 최근 개봉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영화를 떠올리니 그 감정은 더더욱 강해졌다. 또한 최근들어 닌텐도 외에도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이 한국에서 흥행하는걸 보면 일본 콘텐츠 산업의 저력은 어디 가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 콘텐츠를 접하는 빈도가 예전보다 더 높아지기도 했다. 일본 넷플릭스의 Top 10 콘텐츠의 대부분은 한국 콘텐츠가 차지하고 있었고, 어딜가나 kpop 노래들을 쉽게 들을 수 있기도 했다. 일본에서 다시한번 한국 콘텐츠 산업의 부상을 느낄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한국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한국버전 차세대 닌텐도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보고 싶다).

아키하바라는 언제나 화려하다

5. 도쿄는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는 중

예전에는 현금 없이 돌아다니는건 절대 불가능했던 도쿄인데 이번에는 카드 받는 곳이 많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환전을 거의 안해갔고, 실제로 트래블월렛 카드로 거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일부 매장은 현금만 받기 때문에 현금이 조금은 필요하긴 하다). 거의 모든 상점이 스퀘어, 리쿠르트, 파나소닉 중 하나의 단말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현지인들도 대부분 페이페이 혹은 카드로 결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캐시리스로의 전환은 코로나와 주요 기업들의 사업 추진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올림픽의 영향도 상당했다고 생각한다.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고 평가받지만, 도시의 인프라 발전에 있어서는 엄청난 영향을 미친건 분명한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대규모 도심 재개발과 현금의 디지털 전환만 해도 올림픽 적자를 만회하는 발전을 불러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정확한 수치를 찾아보니 아직도 일본에서 캐시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대로 갈길이 한참 남았지만, 그래도 일본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가능하다는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어쩌면 지금이 디지털 전환을 타겟하는 회사들에게는 기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한편으로는 한국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이 더더욱 탄력을 받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라인에 이어 강남언니, 뤼튼 같은 케이스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을까.)

디지털 결제 수단이 보편화

마지막으로

4년만에 방문한 도쿄는 눈에 보일 만큼 발전해있었다. 그런데 문득 나의 4년은 어땠을까 돌아보게 되었고, 지금의 나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사실 4년전 도쿄에 방문할 때는 군대 입대하기 한달 전이었고, 4년 후의 내가 (대학교 졸업까지 미루면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만나고 실제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곤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여러모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4년뒤인 30살에 도쿄에 방문했을 땐 이번에 받은 감정 이상의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오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도시를 일 때문에 수시로 방문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도쿄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서울보다 큰 도시라서가 큰데(그만큼 배울께 많으니까), 장기적으로는 배우러 오기보다는 직접 내 삶의 범주안에 들어오는 장소가 되어서 이 도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일본에 지점을 내든, 회사를 인수하든 등등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의 4년이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이런 거대한 감정을 차치하더라도, 내가 확실히 변했구나 느낀 것이 4년 전에는 아키하바라 돌아다니면서 도라에몽과 마리오 피규어 구경하는게 참 즐거웠는데, 이번에는 미드타운들과 긴자 등을 돌아다니면서 유리 공예 제품 보는게 그렇게 재밌더라. 그리고 예전에는 인사이트 수집이 여행의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좋은 물건을 가지고 싶어하는 소비의 관점에서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면에서 내가 많이 변했구나 라는걸 느낄 수 있었던 여행.

마지막으로 이번에 도쿄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농밀하게 쓰는 느낌’을 다시끔 인지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여행을 가면 일분 일초가 아까워서 엄청난 몰입 상태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게 되는데, 정확히 이 느낌대로 현실을 살아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안그랬던건 아닌 것 같지만, 이 느낌을 잊지 않는다면 조금 더 농밀하게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적는건 이제 좀 부끄러운데… 그냥 이때 당시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구나 기록해두고 싶어서 한번 남겨보았다. 이번에 도쿄에서 받은 느낌을 4년 뒤에 더 크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또 만나자 도쿄!

이번에도 날 반겨주던 타마가와 강

참고: 이번 도쿄 여행에서 유용하게 참고한 자료들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우물안 코끼리님 블로그: 도쿄의 부동산을 탐구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블로그

구로동 최선생님 블로그: 이 글 읽고 모리 부동산에 관심이 생겼다면 아래 글도 꼭 챙겨보시길

푸른안개님 시리즈: 도쿄 핵심 지역의 역사와 건물에 대해서 잘 정리되어 있음

도쿄다반사님 인스타그램: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짜 도쿄를 느낄 수 있는 장소들 찾는데 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