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 연세대 경영전략학회인 GMT의 초대로 벤처캐피탈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VC를 희망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때 발표한 내용을 남겨본다.
벤처캐피탈은 무슨 일을 하나요
나는 VC업을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회사’에 ‘돈’이라는 자원을 ‘re-allocate(재분배)’ 해주는 일이이라고 정의한다.
한 회사가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는 당연하고, 인재도 필요하고, 이외에도 정말 잡다하게 필요한 것들이 많다.
이 과정에서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 생각보다 많다. 즉,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는 소리. 그런데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돈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에, VC들이 이들에게 돈을 제공해주고 대신 지분이라는 ‘ownership(소유권)’을 얻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건 ‘ownership(소유권)’이라고 생각한다.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좋을껀 은행인데, 은행도 VC와 똑같이 돈을 제공하지만 ‘이자’라는 상대적으로 ‘고정적인’ 수입을 얻는 반면, VC가 가지게 되는 ‘지분’은 가치가 전혀 고정적이지 않다. 회사가 망해서 가치가 0원으로 떨어질 하방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반대로 가치차 매우 크게 상승해서 10배~100배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 이 지분 가치다 (=그리고 사실 이건 주식 투자도 마찬가지).
그렇기 때문에 결국 VC들은 향후 지분 가치가 극대화될 회사를 알아보고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다.
VC업의 본질은
특히 ‘스타트업’이라는 대상에 투자하는 업의 특성상 많은 투자 대상들이 실패할 확률이 꽤나 높다. 아니, 정말 생각 이상으로 그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우리가 성공한 스타트업만 봐와서 착각하기 쉬운데, 내 주변만 해도 실패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
그러면 실패할 확률이 이렇게 높은 상황에서 VC들이 투자로 살아남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그게 앞서 말한 지분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이다. 10곳의 스타트업에 10억씩 넣어서 총 100억 투자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9개의 스타트업이 망할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이면 진짜로 이런 경우가 꽤 많다. 그런데 여기서 살아남은 1개의 회사가 만약에 100배 성장했다고 보자. 그러면 펀드 성과가 어떨 것 같은가?
맞다. 한 기업으로만 1000억을 회수할 수 있고, 이 펀드는 10배의 멀티플을 기록하게 된다. 이거 하나로 IRR이 30%가 넘어가서 역대급 펀드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관련해서 이렇게 생각해보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 만약에 똑같이 10곳의 스타트업에 10억씩 넣었는데 모두가 살아남았다고 치자. 그런데 5곳의 스타트업이 생존하는데 그쳐서 원금 회수를 했고, 나머지 5곳의 회사가 3배 정도 성장했다고 쳐보자. 그러면 50억+ 150억 = 200억이다. 아까보다 1/5밖에 못한 수치이다. 물론 이것도 잘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지만, 위의 케이스보다는 아쉬운건 사실이다.
따라서 VC의 업의 본질은 그냥 그럭저럭 성장하는 기업을 찾는게 아닌, 정말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슈퍼 하이 포텐셜의 기업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업은 생각보다 매우 희귀하고, 그래서 이런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9개가 망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단 하나의 성공 사례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100배짜리 기업에 투자하는 법?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내가 이걸 이미 알고 있었으면 진작에 엄청 유명해져있었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에게는 역사라는 좋은 힌트가 있다. 실제로 VC 업계에는 이러한 100배 짜리 기업에 투자해서 ‘홈런’을 친 투자자들이 종종 등장하곤 하였고, 그들이 VC 역사 그 자체가 되었다는걸 공부해보면 알 수 있다 (관련해서 투자의 진화 (The Power Law) 라는 책을 강추한다. 피터 틸의 제로투원과 함께 읽으면 베스트).
내가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건 ‘변화’에 베팅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건 개선이 아니라 변화라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회사들 그리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조금 고쳐서’ 더 낫게 만드려는데 집중하는 모습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가치가 없는건 아니지만, 진짜 큰 임팩트를 내기 위해서는 아예 없던 것을 시도하거나 크게 고치려고 시도하면서 ‘변화’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변화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가장 주목하고 집중하는 것은 ‘기술의 탄생과 적용’이다. 특히 10년 정도의 주기로 굉장히 큰 기술적인 혁신이 나타나는 것 같고, 대표적으로 90년대의 PC -> 00년대의 인터넷 -> 10년대의 모바일 혁명이 있었고, 지금 2020년대는 누가 뭐래도 AI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PC시대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등장했고, 인터넷 시대에 구글이 등장했으며, 모바일 시대에 애플이 세상을 호령했고 우버가 탄생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네이버 -> 카카오가 탄생했고.
그래서 현재 나의 가설은 비교적 명확하다. 10년마다 등장하는 기술 혁신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면서, 이 기술을 가장 잘 레버리지하여 대중화시킬 회사가 정답이고, 이러한 회사를 발굴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붓는다.
벤처캐피탈의 구조를 이해해보자.
벤처캐피탈의 구조 또한 이해해보면 좋은데, 우선 LP로부터 자본을 모아서 펀드를 결성하고 이 돈을 가지고 스타트업에 투자하게 된다 (물론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경우도 종종 존재하나,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함). 벤처캐피탈은 보통 8년짜리 펀드를 결성하며, 매년 펀드결성액의 2% 정도를 수수료로 받아서 운영되고,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돈 (약 85%)을 투자 재원으로 사용하게 되며, 투자해서 나중에 좋은 성과를 얻게되면 우선적으로 출자자(LP)에게 돈이 돌아가게 되고, VC는 기준 수익을 초과한 수익의 20%를 최종 수익으로 얻게 된다. 그리고 (하우스마다 다르겠지만) 이 20% 안에서 돈을 나눠가지게 된다.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면 알겠지만 VC 또한 결국엔 펀드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나의 주머니로 떨어지는 돈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을 수 있다는걸 이야기해주고 싶었고, 또한 LP가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업이다, 생각보다 돈을 쓰는 것 만큼이나 돈을 잘 모으는게 매우매우매우 핵심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VC를 PE랑 비교해서 바라보면 (two-focused fund vs twenty-focused fund)
내가 생각하기에 PE업은 틀리면(깨지면) 안되는 게임을 하는 업이다. 아까 말한 10개의 회사의 투자를 상기해보면 최대한 10개의 회사를 모두 다 생존시키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어야만 하는 업이라는 이야기. 물론 어쩔 수 없이 한두개가 깨지는건 당연히 발생하는 일이겠으나, 그 조차도 최대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업이 PE 업인 것 같다. 최근 MBK 홈플러스 딜 때문에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깊게 보신분은 느끼셨겟지만 MBK는 이미 진작에 홈플러스 피해 최소화하기 위해 어느순간부터 부동산을 꾸준히 팔아왔고 생각보다 손실 폭이 그렇게 크지 않다. 지금 회생절차 신청한 것도 다 손실 줄이기 위한 작업이고.
이러한 업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VC업에 비해서 훨씬 더 보수적으로 투자건을 평가할 수 밖에 없고, 업의 구조상 VC처럼 모험적으로 투자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조금 더 안정 지향적이고 숫자 계산에 밝은 성향이다 하면 PE가 잘 맞을 것 같고, 반대로 자기는 호기심이 많고 미래 상상하기를 좋아하며 따라서 보다 더 낭만적인 투자 성향이 끌리는 것 같다 싶으면 VC로 오면 되는 것 같다. 여담으로 요즘들어서는 한국도 스타트업 생태계가 커지다보니 PE와 VC의 중간 접점에서 Growth Capital 영역 또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PE와 VC 둘다 관심 있으면 이 Growth Capital 영역도 같이 봐보면 도움이 되시지 않을까 싶다.
직장인 입장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라는 직업은?
솔직히 엄청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시간을 주로 쓰는가 보면 크게 1)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데 절반 정도를 사용하며 2) 기술과 미래에 대한 공부를 하는데 나머지 절반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둘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간들이기 때문에 시간의 밀도가 높은 직업이라는 점이 가장 이 직업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이 든다. 특히 사람도 그냥 사람이 아니라 주로 대표들을 만나기 때문에 진짜 살아있는 이야기를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시간들이 상당히 소중한 것 같고 영감도 많이 된다.
그리고 보람찬 면도 크다. 내가 투자한 회사들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매우 뿌듯한 마음이 들고, 내가 인재를 소개해주는 등 회사에 기여까지 할 수 있다면 그 뿌듯함은 배가 된다.
다만 쉽게 도전하면 절대 안된다고도 말해주고 싶다. 우선 이 업은 호흡이 엄청 길다 (직접 해보면 머리로 인지하는 것 보다 훨씬 길다). 한번 투자하면 성과가 나오는데 ‘최소한’ 5년 이상은 걸리는 것 같은데, 따라서 길게 보고 버틸 수 있어야 하며, 그걸 할 수 없다면 시작을 해서는 안되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중간에 내가 잘하고 있는지 평가하기가 매우 어렵다. 결과가 펀드 청산할 때 되어서야 성적표가 나오는 거니까. 그러니 자기가 상대적으로 즉각적인 보상이 필요한 타입이다 싶으면 이 업에 쉽게 도전해서는 안되는 것 같다. 그래서 특히 주니어 레벨에서 이 직업을 가지는게 그렇게까지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한다. 그리고 솔직히 대부분의 주니어 VC 심사역들은 자기가 직접 회사를 발굴하고 투자하는데 시간을 쓴다기보다는, 위에서 지시해온 투자심사보고서를 작성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할 것 같으면 차라리 다른 일을 하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하지만 본인이 호기심이 넘쳐서 정말로 세상의 변화를 추적하길 좋아하며, 위대한 기업을 한번 찾아서 동행하는 것에 대해 보람을 크게 느낄 것 같다면 이만한 직업은 또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투자한 젊은 창업가들 이야기
마지막으로 그래서 나는 어떤 기업들에 투자했고, 왜 투자했으며, 이들은 어떤 특징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보며 강연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까 말한대로 나는 기술을 레버리지해서 변화를 이끄는 회사들을 선호하는 사람이라서 이러한 류의 회사에 주로 투자해왔다. 대표적으로 모바일을 활용해 헬스케어 업을 혁신하는 닥터나우, 마찬가지로 모바일을 활용해 교육 시장을 혁신하는 슬링, 블록체인 산업을 혁신하려는 해치랩스, AI를 대중화하려는 뤼튼 등에 투자했다. 공통적으로 우리가 상대적으로 친숙한 테크 기술 회사이면서 동시에, 각자의 버티컬 영역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려는 회사들임을 알 수 있다.
재밌는건 이 회사들의 대표들이 모두들 90년대생이라는 점이다. 내가 투자한 해치랩스, 슬링, 뤼튼, 닥터나우, 바인드의 대표님들은 순서대로 94, 95, 96, 97, 98년생이시다. 이처럼 나는 전략적으로 90년대생 창업자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왜냐면 결국 혁신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젊은 창업자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고정관념이 적기 때문에 더욱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잘 안하는 도전에 상대적으로 과감하게 뛰어들면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나도 98년생이기에 이들은 내 또래인데,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과 이렇게 직접 창업까지 시도해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창업가들은 무엇이 다를까 고민을 하게 된다. 사실 이들이 창업한 계기들은 다 다르기 때문에 딱히 공통점을 고르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분명한건 이들은 통념과는 다른 삶을 산 케이스가 많은 것 같다.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는 의대생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의료 사업 하고 싶어했고, 바인드 김시화 대표는 계속해서 여러가지 장사를 진행해보면서 사업에 대한 감각을 키웠고, 뤼튼 이세영 대표는 글쓰기 학회 만들고 운영하며 글쓰기를 더욱 쉽게 만드려는 비전을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생각과 경험들을 가진 경우가 많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러한 생각에 굉장히 ‘몰입’되어 있어서 이에 대해 질문하면 그 누구보다도 깊은 대답이 나오는 경우들이 많았다.
여기에서 하나 배울 수 있는건 최대한 다양한걸 접하고 느껴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면서도, 동시에 무언가 관심 가는게 있다면 깊게 몰입해보는 것이 살아가면서 엄청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게 고도화되면 자연스럽게 창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 같고. 나 또한 스타트업이 좋아서 계속해서 탐구하고 몰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타트업 인턴도 경험하였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나도 모르게 VC를 하게 되어서 재밌게 일하고 있는거고. 아마 지금처럼 VC 일도 몰입해서 하다보면 아마 언젠가는 이게 계기기 되어서 더욱 재밌고 임팩트 있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학회 하시면서 다양한 사람들 만나보고 다양한 케이스 접해보면서 더욱 넓은 세상을 접하되, 무엇이라도 관심있는게 생기면 한번 깊게 파보면 좋지 않을까 그런 잔소리를 남기면서 강연을 이만 마무리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