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의 ‘사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대답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전에 VC를 시작하며 적어놓은 ‘VC업의 본질’이라는 글을 발견하였고 (2022년 7월 22일 작성), 적어도 일에 국한해서는 여전히 나의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인 것 같아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공유해본다. 


1. Growth capital

벤처캐피탈(VC)은 단어 그대로 벤처기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해당 기업이 성장했을 때 과실을 나눠가지는 사업을 말한다. 이때 벤처기업은 창업한지 얼마나 되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갓 탄생한 기업부터, 제품이 출시되기 바로 직전의 회사, 출시한 제품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는 회사, 그리고 상장 직전의 회사까지 다양한 스테이지의 회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각자 다른 시기라 하더라도 모두가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실제로 스타트업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폴 그래이엄(YC)에 따르면 ‘스타트업=성장’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VC의 자본은 스타트업의 성장에 가속도를 붙여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벤처캐피탈리스트의 본질이란 성장 포텐셜이 풍부한 스타트업을 찾아내 해당 스타트업에 자본이란 부스터를 집어 넣어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벤처 캐피탈보단 그로스 캐피탈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스타트업에겐 자본을 투자해주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많은 VC들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단순히 자본만 넣어주는 것을 넘어 더 많은 것을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의사결정을 서포트하고, 인재를 소개해주며,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주고, 고민 상담도 해주며, 좋은 인수합병 대상을 찾아주는 등의 활동을 한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VC를 정리하면 성장 포텐셜이 풍부한 스타트업을 찾은 다음 자본을 투자해 운명 공동체가 되고, 이후 최선을 다해 해당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VC의 역량 1) Deal Sourcing

내가 정의한 VC의 본질에 따르면 훌륭한 VC는 우선 포텐셜이 풍부한 스타트업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딜소싱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성장 포텐셜이 큰 스타트업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일차적인 VC의 실력을 가를 것 같은데, 정답이 없고,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1) 대표(+창업가)가 뛰어나야하고 2) 시장이 커야 하며 3) 만들고 있는 제품/서비스가 훌륭해야 한다 → 이 세가지가 스타트업의 3요소라고 부르는데, 아마 이 요소들을 잘 파악하고 평가하는 VC가 성장 포텐셜을 잘 캐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자. 1) 어떤 대표가 뛰어난 대표일까? 나는 고민의 깊이가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고민한 사람은 그만큼 정교한 가설을 들고와서 실행해보고, 거기서 나온 결과를 그 다음 실행해 반영하면서 성장을 거듭해간다. 그것이 복리로 쌓이게 되면서 결과론적으로 엄청나게 큰 성공을 가져오는걸 여러번 봤다. 그러면 고민의 깊이가 깊은 사람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 그건 질문을 해보면 안다. 어떤 사람은 질문을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답변을 못하는 반면, 어떤 사람을 파고 파고 들어가도 답변이 나오는 사람이 존재한다. 후자의 사람은 이미 그 고민을 해봤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실력있는 VC가 되기 위해선 ‘질문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고민의 깊이가 깊은 창업자를 발굴하기 위해선 VC도 마찬가지로 고민의 깊이가 깊어져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2) 커다란 시장을 알아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지금 당장 커다란 산업인지 아닌지는 공부를 조금 해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VC가 알아봐야하는 시장은 ‘앞으로’ 커다란 시장이 될 수 있느냐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거시적으로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는 주로 기술의 발전을 이용한다). 아주 쉽게 예를들자면 현재 시대에는 AI, AR&VR, 블록체인이라는 세가지 기술이 동시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이 요소들이 결합해서 하나의 디지털 세계를 구축할 것이다(메타버스)라는 thesis를 도출하고, 이 흐름을 이끌 수 있는 스타트업을 주로 찾아내는 것이다. 또한 역사를 공부하며 패턴을 발견해 현재 시점에 적용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예를들어 인터넷 시기와 모바일 시기에 탄생한 스타트업을 공부해보니 게임사가 초기의 매스어댑션을 이끌었다는 결론이 도출되면 이를 바탕으로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게임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된다. 친구들이 요즘 어디에 시간을 많이 사용하는지/ 어디에 돈을 많이 쓰는지를 관찰하면 공통점이 보이고, 그것이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에게도 적용되는지 관찰해보고, 이러한 행동들을 여러개 관찰한다음 그 행동들의 공통점을 뽑아보고. 깊게 관찰해서 알아낸 공통점이 긴 변화의 흐름인지를 판단한다면 커다란 시장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3) 제품/서비스가 훌륭한지 아닌지는 우선 본인이 직접 사용해보고, 그 다음 그 제품/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실제로 유용한지 물어보면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훈련을 많이 하면 할수록 제품/서비스를 보는 자신만의 안목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표를 판단에 반영하면 그 좋은 제품/서비즈인지 판별할 확률이 높아진다(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 진짜 어려운건 제품/서비스가 출시하기 전인 시드 단계의 스타트업인데, 이 단계의 스타트업들은 어쩔 수 없이 1,2번의 비중이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그나마 판단에 반영 가능한건 그들이 현재 정의한 문제와, 그걸 풀고자하는 가설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판단하는 수 밖에 없다.

 

3. VC의 역량 2) Value Add

위의 과정을 통해 성장 포텐셜이 높은 기업을 찾아내어 투자까지 완료했다. 하지만 진짜 VC의 업무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최선을 다해 해당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의사결정을 서포트하고(어떤 VC들은 사외이사로 참여하기도 한다), 인재를 소개해주며,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주고, 고민 상담도 해주며, 좋은 인수합병 대상을 찾아주는 등의 활동을 한다. 이 지점에서, 왜 대다수의 VC들이 창업가 출신인지 알 수 있다. 언급한 이 요소들은 아무래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일 수록 더 많은 기여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며, 특히 창업 경험이 있으면 자기 경험을 전수해주는 것 만으로도 엄청 큰 밸류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 같이 경험이 적은 사람은 성장에 기여할 부분이 적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으로도 충분히 성장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깊은 리서치를 제공해주고, 나만의 인재풀을 정리해서 공유해주며, 개인 채널을 활용해 회사들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등의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밸류 애드 부분은 회사 차원에서도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주기적으로 네트워크 파티를 개최하거나,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사업 아이디어를 미리 세워두고 이에 알맞는 팀을 찾아서 키워내거나 혹은 VC가 직접 경영자로 참여해서 같이 성장시키는걸 모델로 가져가는 회사도 있고, 포트폴리오사의 채용을 도와주는 직원을 따로 운영하는 VC 하우스도 존재하는 등 하우스별로 여러가지 전략을 펼치고 있다. 또한 한 스테이지에 집중해서 전문성을 키우거나, 펀드 사이즈를 늘려서 후속 투자까지 지원해주거나 하는 것들도 다 밸류애드를 전문화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참고로 내가 몸담고 있는 하우스의 경우에는 투자 건수 자체를 줄이는 집중투자를 하고, 따라서 한 기업에 투자하는 절대적인 시간 자체를 늘리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정말 실력있는 창업자는 자신들의 회사를 더 크게 성장시켜줄 수 있는 VC 하우스를 고를 것이고, 따라서 가면 갈수록 밸류 애드는 더욱 더 VC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가 되어갈 것이다.

한편으로 이 밸류 애드라는 요소는 다른 투자기관에 비해 VC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돈만 투자하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성장에 간접적/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특히나 스타트업의 경영자와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배우는 것도 많고,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도 크기 때문이다.

 

4. VC의 재해석

위에서 설명한 VC는 대부분들의 VC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내용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가지의 뷰를 더해보고 싶다. 바로 re-allocate money 이다. 벤처캐피탈 또한 다른 투자기관들과 마찬가지로 펀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주체이고, LP들의 돈을 받아서 운영하는 것이다. 이때 대부분의 LP들은 사회적으로 큰손인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경우에는 국가 자금이 많은 편이고 이외에도 기업들이나 부자들로부터 받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모인 LP자금이 결국 스타트업에게로 흘러가는 것이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밴처캐피탈이다. 따라서 나는 벤처캐피탈이 부의 재분배를 위한 기관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 관점으로 벤처캐피탈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VC로써 더욱 더 큰 책임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어디로 돈을 흐르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도, 반대로 큰 손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A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알고보니 사기꾼이었다면? 그래서 세계를 뒤집어 놓을 기술을 가진 B스타트업에게 돈이 들어가지 못했다면?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겠지만 알고보면 이는 국가적으로 손해를 끼치게 된 샘이다.

그러니 항상 VC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지하고 최선을 다해 잘해야 한다. 단순히 누가 어디 들어가니 따라가야지가 아니라, 매일마다 공부하고 치열하게 공부해서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소리다.

 

5. 나의 목표

잘하고 싶다. 어린 나이에 운이 좋게도 VC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잘하고 싶다. 하지만 VC는 상당히 어려운 직업이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정해진 정답도 없을 뿐더러, 내가 한 것들이 잘한 것인지 결과를 알기 위해선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는 결과 만큼이나 과정 또한 잘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자 한다. 단순히 긴 시간이 흘러 이 투자는 잘했다를 넘어서, 그 잘했다를 같이 만들어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VC가 되고자 하며, 설령 결과적으로 잘하지 못했다 한들, 최소한 과정에 있어서 만큼은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VC가 될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과정이 좋지 않았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내가 스스로에 대해 만족할 수 있을까? 아니라는걸 내 스스로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도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단순히 잘했다를 넘어,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의 확신을 가지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시도해보며 결국 내가 걸어간 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대표적으로 박현주 회장은 단순히 주식 운용으로 돈을 버는데에 그치지 않았다. 조직을 성장시켰고, 새로운 분야로 끊임없이 확장했으며, 해외 진출까지 성공했다. 나 또한 하나씩 증명해나갈 것이다. 단순히 씨뿌리기가 VC가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이런 식으로도 기업을 도와줄 수 있구나 보여주며, 토큰 투자 & 주식의 토큰화를 통해 VC도 유동화가 가능하다는걸 보여줄 것이며, 공모 참여가 가능한 VC도 시도해볼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VC를 넘어 새로운 금융산업의 선도자로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단순히 잘하는걸 넘어, 틀을 깨서 혁신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지금의 나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