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도 2월은 뉴욕을 찾아보고, 경험해보고, 회고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나눠보면 좋겠다 싶은 내용들을 한번 공유해본다.
결국 뉴욕이었다
예전만해도 내가 처음으로 미국에 가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서부, 특히 실리콘밸리 지역부터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랜기간동안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내가 선망해온 스타트업 일대기들은 대부분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같았다면 영감을 받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서부를 가는 것이 맞았고, 아니면 일적인 차원에서라도 서부를 먼저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미국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뉴욕이 먼저 떠올랐으며, 실리콘밸리는 다시 생각을 해보아도 뉴욕에 비해 끌리지가 않았다. 왜 였을까?
여러가지 이유들이 스쳐간다. 미국하면 뉴욕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화려한 도시를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여행 취향, 현재 운전을 할 수 없음, 최근에 뉴욕 관련된 책을 읽음 등등. 그런데 이것들은 굳이 생각해봤을 때 떠오르는 그냥 사소한 근거들일 뿐이고, 결국 지금의 나는 뉴욕하면 떠오르는 메세지 그 자체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뉴욕하면 떠오르는 메세지가 뭐냐고? 세계 최고의 도시이자,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도시, 그리고 그 어딘가보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 들끓어서 야망이 넘쳐 흐르는 도시. 즉, 지금의 나는 이러한 메세지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싶었고 그걸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도시로는 뉴욕보다 더 나은 곳은 없었던 것 같다.
중요한건 지금의 나는 실리콘밸리가 아닌 뉴욕을 원했다는 점이고,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향성이 예전과는 꽤나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투자자로 살아가게 되면서 생겨난 모습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위대한 도시들은 야망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도시 속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수백 가지의 미묘한 방식으로 도시는 메세지를 보낸다. 당신은 더 할 수 있다, 당신은 더 노력해야 한다.” – 도시와 야망, 폴 그레이엄
다양함의 도시란
뉴욕에 가기 전 뉴욕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이야기가 뉴욕은 다양성의 도시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뉴욕은 미국의 도시라기보다는 세계의 도시에 어울린다는 소리들이 많았다. 가보기 전에는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와닿지 않았는데, 갔다와보니 이제는 끄덕이게 된다.
뉴욕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뉴욕은 그래도 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흑인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고, 그들 만큼이나 아시안들도 많은 것이 놀라웠다. 사실 그냥 전세계 모든 국가의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뉴욕인 것 같았다.
그렇다보니 전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곳이 뉴욕이었다. 한국에서 거의 먹어본적 없는 중동 요리들을 즐겼고, 그리스 음식을 처음 먹어보기도 했다. 뉴욕에서는 오히려 오리지널 미국 음식이라고 부를만한 음식점들을 찾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도시의 풍경도 정말 다양하다고 느낀 것이, 차이나타운에서 조금만 걸으면 바로 리틀 이탈리가 나오더니, 거기서 또 살짝 걸으면 소호가 나오는 등 스트리트 하나 걸을때마다 도시의 모습이 순식간에 달라지는게 뉴욕이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못사는 동네와 아주 잘사는 동네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도시가 바로 뉴욕이었다.
뉴욕은 다양한 관심사를 충족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금융의 도시이자, 미술의 도시이고, 음악의 도시이자, 패션의 도시이기도 한 뉴욕. 이토록 다양한 것들이 생각보다 작은 지역 안에 전부 다 밀집되어 있다는게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는게 더더욱 신기한 것 같다. 괜히 뉴욕이 세계의 도시가 아니었다.
요약하면 뉴욕은 정말로 다양한게 많다. 건축, 미술, 디자인, 서점, 빈티지, 문구 등. 그래서 내 취향을 찾아보기에 이만한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문화를 즐겨봅시다
특히 뉴욕에서는 정말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나만해도 뉴욕에 머무는 동안 뮤지컬, 클래식, 발레, 재즈를 감상했고 MoMA, 메트로폴리탄, 휘트니 등 많은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클래식은 뉴욕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스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감상했고 발레는 뉴욕 시티 발레단의 컨텐포러리 NEW COMBINATIONS 공연을 보았는데, 두 공연 모두 빈 자리가 없는게 인상깊었다. 아마 두 공연 모두 링컨센터에서 열렸는데 접근성이 워낙에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참고로 링컨 센터는 록펠러 3세의 지원으로 Robert Moses가 주도한 프로젝트인데, 지금도 유용하게 잘 쓰이는걸 보면 도시 인프라에 투자할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여담으로 발레는 어릴 때 러시아에서 본 이후로는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굉장히 세련된 공연이였어서 클래식 이상으로 볼만했다.
뮤지컬은 무난하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다는 라이온킹을 보았는데, 이런걸 어떻게 상상해낸거지 싶었고 그만큼 연출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찾아보니 라이온킹 뮤지컬은 20년간 8조원이 넘는 매출을 발생시켰던데, 바로 슈퍼 IP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그리고 IP를 잘 활용하고, 더 나아가서 타임스퀘어라는 지역을 살려낸 디즈니 또한 위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미술관이야말로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부러운 부분이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 교과서에서만 보던 수 많은 그림들을 도시 한복판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게다가 뉴욕 시민은 기부 입장도 가능하지 않은가. 이러니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심만 있다면 예술적 취향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재밌었던 또 다른 포인트는 작품을 어디로부터 구매/기증 받았는지 보는 맛이었다. 또한 방마다 이름들이 적혀있었는데 (ex Henry R. Kravis & Marie-Josée Kravis Gallery), 아마 미술관 기부자들을 위해 적어둔 것 같았다. 실제로 MoMA나 MET 같은 미술관은 펀드레이징 부서가 따로 존재해서 이들이 기부자들을 담당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뉴욕에서는 부(Wealth)가 단순히 머무르지 않고 사회를 위해 순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세계 정상 급의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건 이 도시를 살아가는 자들의 축복과 같은데, 이게 결국 가능한 이유는 돈이 많이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았다. 참 뉴욕 다운 결론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는 것은
뉴욕은 현대에 들어서 건축물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느껴보기에 가장 좋은 도시인 것 같다.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보자르 양식의 건축물들과, 레버하우스 & 시그램빌딩 같은 ‘오피스 빌딩’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대표 주자들인 건축물들, 그리고 펜슬 빌딩처럼 최근 들어서 만들어진 최신 건축물까지 모든 건축을 맛볼 수 있는 도시였다.
재밌는건 각각 건축물들이 지역별로 모여있는게 아니라 다 섞여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뉴욕에는 랜드마크 보존 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어서 랜드마크로 지정되면 건물을 부술 수 없다. 이는 펜 스테이션이라는 역사적인 기차역이 있었는데 개발 논리에 의해 이를 부수고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 들어서버렸고, 이에 시민들이 화가 나버려서 생기게 된 조직이다. 그런데 랜드마크로 지정이 되어버리면 땅 주인 입장에서는 개발을 할 수 없으니 손해를 보게 되는데, 이를 위해 뉴욕에서는 남은 용적률을 팔 수 있도록 공중권 거래를 허용해두었다. 그래서 뉴욕에서는 역사적인 건물과 바로 옆에 초고층 건물이 공존하는 신기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고, 이런 부분이 뉴욕만의 다이내믹스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뉴욕에서 걸어다니다가 멋저보이는 건물을 만났다면 지번을 이용해서 검색을 해보자 (뉴욕은 계획도시라서 대부분의 주소가 ~에비뉴 ~스트리트이기 때문에 주소 찾기 쉽다). 위키백과에 해당 건물의 히스토리가 상세하게 나와있는 경우가 많다. 위키백과로 이 건물의 건설을 누가 주도했고, 어떤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주인은 누구인지 찾아보면 도시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도시의 역사적 맥락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도시의 발전
나는 도시가 구역별로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어있는지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점에서 뉴욕은 스트리트 하나 건널 때마다 도시의 풍경이 달라지고, 구역별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달라진다는게 선명하게 보이는 도시여서 돌아다니는 맛이 있었다.
안돌아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주요 지역들은 다 걸어본 것 같은데, 크게 한국과 비교해보면 미드타운 = CBD, 월스트리트 = YBD, 허드슨야드 = GBD 처럼 느껴졌다. 물론 도시 한가운데 강과 공원의 유무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긴 하지만.
이중에서도 내가 아무래도 최신 도시 계획 프로젝트 보는걸 좋아하기도 하고, GBD 발전에 관심이 많기도 해서 그런지 허드슨 야드 (+첼시&하이라인) 구경하는게 가장 재미있어서 여기서만 이틀을 보냈다. 관찰해보니 현재 뉴욕의 고급 주거지역은 센트럴파크 주변부에 위치하는데 (서쪽의 산 리모, 더 다코타 / 남쪽의 스테인웨이 빌딩 등 펜슬타워 / 동쪽의 5번가 따라 형성되어있는 전통 부촌), 앞으로는 허드슨야드 쪽으로 모일 것 같다.
왜냐면 이 지역은 이미 세계 유수의 회사들이 자리잡은 상태라는 점, 강변 옆에 있다는 점, 월가와 미드타운 중간에 있다는 점, 펜스테이션이 가까이 있다는 점, 뉴저지와 연결되는 해저터널이 건설되고 있다는 점, 휘트니 미술관의 이전으로 수많은 갤러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보았을 때 신흥 부자들이 콘도미니엄 사기에 가장 좋은 자리일 수 밖에 없어보이기 떄문이다.
여담으로 지역 단위로 돌아다니는 것 만큼 한 도로를 따라서 걸어보는 것 또한 뉴욕을 느껴보는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브로드웨이 (사실 브로드웨이는 타임스퀘어 부근을 말하는게 아니라 도로명이다), 42번가, 53번가, 5번가, 파크 에비뉴, 하이라인, 허드슨 스트리트, 카날 스트리트만 걸어다녀도 뉴욕 잘 돌아다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듯.
뉴욕에서 나를 설레게 만든 회사들
뉴욕에서 가장 좋았던건 매직아워 시간에 바라보는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었지만, 그것 만큼이나 나를 설레게 만든건 익숙한 회사들의 로고를 마주치는 순간들이었다. 뉴욕을 돌아다니면 수많은 회사들의 로고를 마주하게 되는데, 우리가 익숙한 애플, 구글 같은 기업들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화이자 같이 뉴욕에 본거지를 두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 삼성과 현대 같은 우리나라의 기업 등등 다 만날 수 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뉴욕이 세계 최고의 도시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일 것이다. 기업은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이 모여 도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니.
특히 지금의 나는 JP morgan chase, Citadel, DE Shaw, KKR, Blackstone 같은 금융투자회사들 로고를 보았을 때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그저 건물을 스쳐 지나간 것이 전부인데 그 순간에 ‘이런 곳에서 일해보면 재밌겠다 & 나도 이런거 만들고 싶다’를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엄청나게 큰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 같았다.
비슷한 결에서 재밌던건 뉴욕이라는 도시에서는 사람들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록펠러 센터, 카네기 홀 같이 랜드마크성 건물들 이름 자체에 사람 이름이 박혀있음은 물론이고, 그랜드센트럴에서 벤더빌트, 링컨센터의 데이비드 게펜,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스테픈 슈워츠만 같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 기업 활동을 통해 부를 이뤄낸 기업가(의 가문) 이름들인데, 이 도시가 기업가들을 얼마나 존중해주고 있는지와, 그만큼 존중에 걸맞게 기업가들이 도시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이러한 부분에서 자본주의 끝판왕 도시의 모습을 제대로 느꼈달까.
또한 길을 걷다가 아주 멋지고 웅장한 빌딩을 발견했는데 거기 걸려있는 회사는 처음 들어봤거나 아니면 이름은 어디선가 봤는데 정확히 무슨 회사인지는 모르는 경우를 마주하는 순간도 아주 흥미로웠다. 이런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두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추가로 리서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뭐랄까 지평이 넓어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링컨 센터의 발레 공연장 이름은 ‘David H. Koch Theater’인데, 이 분이 뭐하는 사람일까 싶어서 찾아보니 Koch Industry 창업자의 둘째 아드님이셨고 알고보니 Koch Industry라는 회사는 미국의 비상장 회사들 중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회사였다 (참고로 가장 큰 회사는 ‘카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현재 주식 투자해놓은 미국의 한 회사가 이 Koch로부터 투자를 받았던게 기억이 났고, 해당 투자건이 내 생각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걸 여행을 갔다온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처럼 여행은 내가 놓쳤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해주어 나의 시야를 넓혀주는 아주 훌륭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또 다른 예시로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에서 ‘Marsh & McLennan’라는 멋져보이는 로고가 있길래 마찬가지로 일단 사진 찍어놓고 한국 와서 찾아보니 시가총액이 무려 $100b가 넘어가는 기업이었고, 더욱 재밌는점은 재보험사를 기반으로 뮤추얼 펀드를 운영하는 Putnam Investments, 컨설팅사인 Oliver Wyman 같은 회사들 계속해서 사모으면서 마치 종합 금융 지주회사 같은 회사로 진화했다는 부분이었다. 버크셔가 지주회사를 만드는 플레이북을 아주 잘 보여줬지만 ‘금융지주회사’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레퍼런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훌륭한 레퍼런스를 발견한 것 같아 흥분되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현재 ‘금융 제국 JP 모건’이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뉴욕에서 모건 라이브러리의 화려함과 컬렉션의 진귀함을 보면서, NYSE와 페더럴 홀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The Corner의 위치를 보면서, 그리고 현재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270 Park Avenue의 새로운 JP 모건 빌딩을 보면서 모건 패밀리의 영향력을 체감했고, 실제로는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고 그 영향력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여행을 갔다오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두꺼운 JP 모건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을까? 설령 읽었다 한들 책에 나와있는 내용들이 체감이 되었을까? 나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야말로 이번 여행이 나에게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개츠비
돌아오는길 비행기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최신 버전의 위대한 개츠비 영화를 보았다. 아마도 중학생 때였나, 예전에 소설을 읽을 때는 개츠비가 죽음을 당하는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만 있는데, 이번에 영화를 볼 때는 초록 불빛을 향한 마음과 그걸 이뤄내기 위한 개츠비의 삶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찾아보니 평론가들은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에서 ‘위대한’의 의미는 역설을 담고 있다고 하기도 하던데,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정말로 원래의 정의의 ‘위대한’의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더 찾아보니 이 책은 피츠제럴드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던데 그렇다면 더더욱 ‘위대한’ 그 자체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본인을 굳이 안좋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추가로 누군가에게 위대한이라는 의미는 정말로 순수하기 그지 없는 이상향을 담는 단어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위대함은 중간에 굴곡과 실수들을 경험하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에 가까워보이는 것 같다. 헛되보일지언정 희망을 품고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기회를 주는 것이 인생이고, 그걸 잡는 모습이 결국 위대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고, 최소한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위대했다고 표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해외로 나가실 생각은 없으세요?
요즘 누군가를 만나면 듣게 되는 단골 질문 중 하나다. 나는 평생 한국에서만 살아왔고, 영어도 잘 못하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내가 원하는 것도 기업가가 되는 것이었지 세계 정복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잘해서 해외로 뻗어나가는 것이 당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들어서 한국이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들리고, 실제로 그러한 데이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내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그 근거를 바탕으로 해외로 나가야한다는, 그리고 그중에서 몇몇은 실제로 해외로 나가는 선택들을 하는걸 보면서 다시 고민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편안하다는 이유로 해야하는걸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러한 고민들.
사실 이번 여행은 그래서 나가보게 된 것이었다.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동남아들을 돌아다니면서는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살아야만 한다라는 느낌을 주진 못했는데, 만약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미국을 가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결론적으로 미국, 뉴욕을 다녀와서도 ‘난 여기서 살아야만 해!’라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오히려 뉴욕을 다녀와보니 한국만의 장점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오고, 나는 서울이라는 이 도시를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뉴욕과 도쿄중 한 곳에서 평생 살아야한다면 난 오히려 도쿄에서 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단순히 여행지로만 즐기면 안되는 도시라는 생각은 들었고, ‘여기를 자주 넘나들 수 있도록 판을 짜보긴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었으며,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야경을 감상하면서 ‘나 여기 깃발 꽂으면 참 좋겠다’ 생각을 여러번 했다. 따라서 이전보다는 글로벌에 대한 생각이 더 커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니 언젠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은
살면서 한번은 가야만 했고, 뉴욕은 이왕 갈꺼면 빨리 가는게 맞는 도시인 것 같다. 이 도시가 주는 야망은 분명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고, 그 힘은 생각보다 오래 갈 것임이 분명해보이기 때문이다.
기타: 이런 저런 정보와 생각들
미국 건축물 중 가장 인상깊었던건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지금도 웅장한데 100년전에는 얼마나 위대했을까 / 메이시스는 정말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실제로 인수제안도 받았다고. 그리고 뉴욕 백화점들엔 식품관이 없다 / 토스트가 팁 주기 편하게 시스템을 잘 만들어놓았다 / 뉴욕 사람들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 오히려 피터 루거에서의 서비스가 가장 불친절했다 / 대마초는 정말 흔하다 / 아마존 패스는 홀푸드에서도 할인 적용이 되더라 / 초바니 요거트 아주 만족스럽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찾아보니 SPC가 수입했었던데 망한 것 같다 / 스위트그린이나 CAVA 같은 건강식 음식점들이 빠르게 지점을 늘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 뉴욕에서는 보기 힘든 미국의 모습을 브루클린 가면 많이 느낄 수 있다 / 뉴욕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 그런데 새벽에 돌아다니면 정말 너무 무섭다 / 지하철은 더럽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 뉴욕에는 캐딜락 에스켈러이드가 정말 많다. 한국의 G90 포지션으로 보인다. 그리고 운전 기사들의 모습을 정말 쉽게 볼 수 있다 / 뉴욕 사람들은 강아지와 함께 살아간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2명 중 한명이 강아지와 함께 살아간다고 / 나도 큰 부자가 된다면 사회에 많은 부분 돌려주고 떠나고 싶다 / 여행은 몰입해서 살아가는 삶을 너무 잘 느끼게 만들어준다. 매 순간을 마치 여행하는 것 처럼 살아간다면 훌륭한 인생이 될 것 같다 / Sonder 숙소는 만족스러웠다. 역설적으로 소비자가 만족스러운 만큼 회사는 어려운 것 같지만 말이다 / 우버의 UX는 카카오택시보다 더 좋은 것 처럼 느껴졌다. UI도 깔끔하고 심플한데 필요한 정보가 다 있다 / 월스트리트의 황소 동상은 기습 설치된 작품이다 / 뉴욕에서 마신 커피중에선 La Colombe가 가장 맛있었어서(아이스 커피를 제대로 만들어줌) 브랜드 스토리 찾아보니 작년에 초바니가 $900m에 인수했네. 기사를 읽어보니 요거트랑 라떼 만드는게 비슷한 점이 많은가보다. 나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해준 두 브랜드가 하나로 합쳐져있다니 앞으로 관심있게 보게 될 것 같음. / 맛집: Omar’s Kitchen, Katz’s Delicatessen, Taverna Kyclades, Wo Hop, Los Tacos, Cull & Pistol, Quality Bistro, Ravagh Persian Grill / 660 Fifth Avenue에 있는 맥쿼리 빌딩 상당히 소유하고 싶음. 현재 브룩필드가 가지고 있긴 함 / 다음번에 스테이크를 먹으러 피터 루거를 갈 것 같진 않다. Quality Meats가 궁금하긴 함 / 뉴욕공립도서관 자리는 원래 저수지였다 / 첼시 마켓은 구글이 소유하고 있다 / 록펠러센터는 대공황 시기에 건설되었다 / 클로이스더스는 George Grey Barnard의 수집품을 록펠러 주니어가 인수한다음 메트로폴리탄에 기부해서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멀지만 가볼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 Summit 전망대가 있는 원 벤더빌트 빌딩이 건설될 때 국민연금이 약 6000억원 투자를 진행해서 지분 27.6%를 확보한 바 있다 / 그랜드센트럴 바로 옆 270 파크 에비뉴에는 JP 모건의 새로운 본사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원래도 이 자리에 JP 모건 본사 빌딩이 있었는데 주변 공중권 사모아서 새로 짓는 건물이다 / 메트로폴리탄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특히 티파니의 유리공예가 기억에 남는다 / 나는 SOM이 설계하는 건축이나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보며 영감을 많이 얻는다 / Tin-Building by Jean-Georges는 이스트 강 쪽에 있는 마켓인데 강추한다 / 전망대는 탑오브더락, 엣지 가봤는데 둘다 각자만의 매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엣지가 더 좋긴 했음 / Pier 57에는 옥상이 있는데 여기서 보는 야경도 꽤나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