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츠타야’라는 이름을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라는 개념과 ‘다이칸야마 츠타야’의 성공이 맞물리며 매우 유명해진 츠타야.
이번 글에서는 츠타야의 ‘라이프스타일 제안’ 의미를 생각해보고,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는지 적어보려고 한다. 작년에 다이칸야마 T사이트를 방문하고 글을 쓴적 있는데, 이후로 상당히 많은 츠타야를 방문했고 그 과정에서 공유하고픈 인사이트들이 많이 쌓여서 적어본다.
#츠타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많은 이들이 츠타야=서점 이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츠타야는 음반, 영상 대여업으로 성장한 회사다. 이는 회사명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 츠타야의 모기업은 CCC, Culture Convenience Club의 약자다. 이를 통해 문화가 키워드라는걸 알 수 있다.
츠타야(CCC)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스다 무네아키는 말한다. ‘문화란 생활양식이고, 이는 곧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고. 마스다는 각각의 가게에서 접해야했던 음악, 영상등의 문화를 한곳에서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사카 히라카타에 첫 츠타야를 연다. 마스다는 츠타야에서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며 ‘츠타야는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회사’라고 정의내렸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이란 키워드에 하나 더 추가된 키워드가 ‘제안’이다. 제안은 쉽게 말해서 편집샵의 개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 중에서 일부를 선정해 ‘제안’한다는 것. 츠타야는 현재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고 자신을 표현한다.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은 무슨 의미일까? 현재는 물건이 남아도는 시대가 되었다. 산업화 초기에는 대량생산으로 인해 모두가 똑같은 물건을 소비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공급이 많아지자 ‘소비’의 측면이 더 중요해졌다. 차별화를 위해 디자인이란 개념이 등장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며 미디어를 통해 소비를 유발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자기 주관’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물건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미디어가 제시한 선택지에 Yes or No를 표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는 물건이 남아도는 시대이지만, 우리들의 주관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시대다.
츠타야 또한 미디어처럼 선택지를 제시해준다. 하지만 츠타야가 미디어와 다른 것은 한 두개만을 골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제안’이라고 표현하는 일차적 선택은 츠타야가 하지만, 이 제안은 고객들이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다. 세상에는 천여개가 넘는 냉장고 종류가 있지만 츠타야는 그 중에서 20여개를 골라 고객에게 제안한다. 고객은 20개 중 하나를 선택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해진다‘.
즉, 츠타야의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란 물건이 남아도는 시대에서 고객들이 자기 주관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츠타야 고객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자기 주관의 학습이 이루어지고, 이는 츠타야의 제안력또한 높이는 동시에 도시 전반의 수준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츠타야가 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츠타야는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까?
그렇다면 츠타야는 어떤 방식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을까?
#1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책’이다. 츠타야는 책 또한 제안한다. 광화문 교보문고 같이 많은 책을 진열하지않고, 고객들이 즐길만한 라이프스타일 카테고리를 골라 그 분야의 가장 적절한 책만 진열해놓는다. 츠타야가 책을 기본으로 생각한다는건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다이칸야마에 츠타야’서점’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츠타야는 많은 책들을 표지가 보이게 놓아둔다. 옆면으로 꽂아두는 것에 비해 훨씬 적은 책을 진열하게 되지만, 고객들은 오히려 책들이 더 눈에 들어오게 된다. 책의 옆면만 봐서는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제목에 불과하지만, 앞면을 보면 무슨 책인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배열을 살짝 바꾼 것에 불과하지만 츠타야의 제안력을 크게 높여주는 요소다.
츠타야에 가면 물건과 책, 잡지가 같이 놓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흔히 츠타야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모습이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건이 실생활에서 쓰이는 모습을 책, 잡지를 통해 보여줌으로서 그 물건을 사용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게끔 한다. 단순히 냄비만 진열하지 않고, 그 옆에 음식 잡지를 놓아 ‘이 냄비를 통해 이런 음식을 해먹으면 맛있겠구나’ 이미지가 떠올리게 구성해놓은 것이다.
#2 츠타야는 2015년 후타코타마가와라는 지역에 츠타야가전을 새롭게 오픈했다. 이름에 나와있는것 처럼 이곳에선 ‘가전’을 다룬다. 처음에 들었을때는 하이마트 같은 매장의 모습이 떠오르며 ‘츠타야가 뜬금없이 가전제품을 판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 방문해본 츠타야가전은 기존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츠타야에 가전이 살짝 추가된 모습이었다. 가전제품들은 전혀 뜬근없지 않았고, 오히려 당연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래 사진은 가장 인상깊었던 Food&Cooking의 모습이다. 요리를 하기 위해선 전자레인지, 밥솥같은 가전들이 필요하다. 츠타야가 완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가전제품이 필연적으로 포함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음악을 듣기 위해선 이어폰, 스피커가 필요하고, 영상을 보기 위해선 티비가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노트북,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고. 가전은 정말 츠타야스러운 품목이었다. 게다가 가전제품들이 츠타야공간에 놓여져있고, 츠타야의 제안을 거치니 기존에 알던 물건들도 더 소유하고픈 느낌을 받았다.
#3 책과 잡지 그리고 물건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모습은 최근 츠타야에서 공통적으로 마주할 수 있지만, 츠타야의 모습은 지점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롯폰기는 도쿄의 대표적인 오피스지역인데, 이곳에 위치한 롯폰기 츠타야 1층에는 스타벅스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있다. 그리고 자리에서 가까운곳에 문구류들을 배치해놓았고(필요하니까), 그 옆에는 잡지와 여행코너(쉬어가라고)를 배치했다. 그 지역에 가장 적합하게 매장을 구성해놓은 것이다. 심지어 운영시간 또한 다른 츠타야보다 훨씬 늦은 새벽4시(!)까지 운영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롯폰기 츠타야.
이러한 모습은 다른 츠타야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도쿄의 번화가이자 쇼핑가인 긴자에 위치한 긴자식스 츠타야는 예술 카테고리에 집중했으며, 도쿄의 부촌에 자리잡은 다이칸야마 츠타야는 부유하 노년층을 고려한 카테고리(인문,문학/디자인,건축/요리,여행)를 만나볼 수 있다. 가장 인상깊은 츠타야는 하코다테 츠타야였는데, 이곳은 아이들을 위한 장소가 엄청나게 크다.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과 식당 또한 마련되어있었는데, 지역 커뮤니티의 본원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한 것이 정말 인상깊었다. 이처럼 츠타야는 지역성을 고려한 매장을 만들어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하코다테 츠타야)
#4 마지막으로 츠타야는 라이프스타일을 단순히 보여주는데서 끝나지 않고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츠타야 음반코너에 가보면 모든 CD들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 츠타야가 기본적으로 렌탈샵이라서 가능한 일이지만, 한국에서 비닐에 쌓여진 CD를 바라보는것에 머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비닐에 쌓여져있는 잡지들도 츠타야에서는 자유롭게 읽어볼 수 있다. 굉장히 신기한 모습도 있었는데, 하코다테 츠타야에선 게임까지 경험할 수 있게 해놓았다. 자신의 닌텐도를 가져오면 게임을 해볼 수 있게 해놓았고, 유희왕같은 카드를 파는 장소도 있었는데 이곳 앞에는 지인들과 카드게임을 할 수 있는 장소까지 마련해두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경험하게 해두니 자연스럽게 츠타야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제안해놓은 라이프스타일 모습들을 더 많이 그리고 더 깊게 바라보게 되었다. (사진은 유희왕카드 하는 모습)
#라이프스타일 제안이 가능한 이유
츠타야에 있다보니 ‘왜 한국에서는 이런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왜 일본에서 츠타야가 탄생한걸까’라는 질문으로 옮겨갔고 한참을 생각하니 나름대로의 답이 떠올랐다.
일본은 츠타야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것 같다.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위해선 필요한 조건이 있다. 양과 질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선 그만큼 선택지가 많아야 한다. 선택지가 많아야 좋은걸 고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니까. 한마디로 ‘다양성’이 충족되어야 양과 질이 만족스러운 라이프스타일 제안이 가능해진다.
일본은 이 조건을 특히 만족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1억 2천만이라는 세계 11위의 인구와 세계 3위 경제규모는 커다란 내수시장을 만들어낸다. 자국 내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들을 위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이 있는 나라다. 실제로 책, 잡지는 물론이고 가전, 음반, 영상물 등을 매우 다양하게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또 그만큼 소비도 이루어지고 있고.
츠타야에 방문하면 엄청나게 많은 잡지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나는 이 모습이 츠타야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규모의 내수가 만들어내는 다양성, 이것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이유라고. 그리고 츠타야의 제안을 통해 자기 주관이 들어간 선택을 하고, 소비가 이루어지고,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더 수준높은 제안을 하고, 더 깊은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도 한몫하는게 아닐까. 일본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나라였고, 그 뒤로 기나긴 경제불황을 겪은 나라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세대들이 나타났고, 이로인해 일본인들은 정답이란게 존재하지 않다는걸 학습한게 아닐까. 한때는 뭐든지 소비하면 되었지만 이후로 합리적인 소비가 중요하다는걸 배웠고, 이들이 츠타야의 라이프스타일 제안 개념에 공감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또한 츠타야가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온라인 시대에서도 츠타야가 경쟁력 가지는 비결은?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해보자. 아마존 알리바바같은 온라인 전자상거래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시대에서 츠타야가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있을까?
#1 뻔한 결론이지만 앞에서 설명한 라이프스타일의 제안법이 너무나 뛰어나서 경쟁력을 가진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개인적으로 츠타야에선 항상 좋은 느낌을 받고 나오고(깨달음도 얻고 나온다), 나도모르게 책, 잡지 한권씩을 사오게 된다. 한 명의 고객 입장에서 정말 만족스러운 곳이다. 아마 츠타야는 온라인 시대에서 오프라인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가 아닐까.
#2 츠타야를 방문하는 고객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에 민감한 사람들이 아닐거란 추측이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츠타야가 들어선 지역은 대체로 잘사는 지역이다 (다이칸야마, 긴자 같은곳). 온라인이 가지는 최대 장점인 ‘가격이 저렴하다’는 츠타야 고객과는 거리가 먼 장점인 것 같다. 오히려 오프라인이 지닌 ‘즉시성’이 고객들에게 커다란 장점으로 다가오는게 아닐까 생각이들었다.
#3 츠타야는 T포인트라는 맴버쉽 서비스를 운영중이다. 이 맴버쉽에 가입한 수가 5천만이 넘는다고 한다. 일본인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츠타야 맴버쉽에 가입되어있다는 소린데, 그만큼 혜택이 많은게 아닐까? 마스다(츠타야 CEO)가 말하길 T포인트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통해 기획을 하고 있다는데, 그만큼 T포인트는 회사와 고객 모두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 글의 초고를 작성하고 조금 덧붙여보려고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와 ‘매거진B 츠타야‘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느낀 것들을 마스다 무네아키가 언급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기획의 목표가 실제 고객(나)에게 정확히 이루어지는게 보통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는 타지에서 온 관광객인데. 기획의 방향성을 떠나서, 기획을 실제로 이루어내는 능력은 츠타야가 최강이 아닐까 싶었다. 앞으로 츠타야 미래에 관한 정보는 자세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일본에 있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일본사람들은 정말 자기 취향이 뚜렸하구나’라는 점이었는데, 츠타야가 많은 영향을 주고있는듯 했다. 요새 한국에서도 ‘마치 츠타야에 온 것 같았다’라고 표현되는 장소들이 많아졌는데, 그러한 장소들이 츠타야처럼 ‘자기 주관의 학습화’를 이끌어내는 좋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